편차 심한 국내 창작SF 단편집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에서 발행하는 월간 웹진 크로스로드 의 각 호마다 수록되었던 국내 창작 SF 단편들을 모았다. 이 단편집에 나타난 한국 창작 SF계의 현실을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이렇다. 선두 그룹에 세 명이 한국 신기록을 내며 뛰고 있고, 그 한참 뒤에서 중도 그룹에 한두 명이 동네 한 바퀴 수준으로 허덕이며 뛰고 있으며, 대다수는 한참 한참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건강에 좋은' 뒤로 뛰기를 시도하고 있다. 히죽히죽 웃으며.
대리전 ★★★★
다시 다시 읽어도 좋았다. 긴 버전과 짧은 버전 모두 종이책으로 읽을 수 있게 됐구나. 동명 작품집이 나왔을 때는 긴 버전이 더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짧은 버전도 나름 또 괜찮네.
오래된이야기
제목 그대로다. -_-;;; 심지어 한국 순정 SF 만화들에서조차 남발된 지 오래인 상투적인 이야기를 별로 새로운 거 하나도 없이 되풀이하자면 뭐 어쩌자고.
카이와판돔의번역에관하여 ★★★★
역시 다시 읽어도 좋았고, 멋졌다.
땅밑에 ★★★★
역시나 다시 읽어도 또 여전히 멋졌다.
얼터너티브드림
결국 결말보단 게임 소설을 방불케하는 중반부에 방점이 찍히는 소설인데, 그렇다고 쳐도 결말이 너무 뻔했고, 뻔한 결말 때문에 소설 전체의 분량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사관과늑대
그야말로 뭐하자는 건지. (싸우자는 건가? ) 작품의 설정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방식이 너무 서툴렀고 끝맺음도 엉망이었다. 아니,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다. 인간 정신을 다른 육체에 심을 수 있는 수준의 문명이라면 개를 사람처럼 키우는 게 더 쉽지 않았을까? 게다가 군바리로 써먹기엔? -_-;;;
로도스의첩자
좀 너무 길었다. 후버 씨는 결국 비터엔드 의 쿠게어 형사격인 캐릭터인데, 그럴 바에야 좀더 코믹하게 나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꿈꾸는지놈의노래
비명을찾아서 때부터 시작해서 마법성의수호자나의끼끗한들깨 에서 정점에 달했다고 착각했던 작가의 '딸또래 연하녀와의 로맨스 판타지'가 아직도 건재할 뿐더러 심지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_-;;;;
향기
뻔하지만 좋았다. 모든 면에서 알맞게 균형 잡은 글.
필멸의변
오래된이야기 와 마찬가지로 쌍팔년도 초창기 SF의 향취가 꽤 짙었는데, 서로 간에는 비교될 수준이 아니다. 나쁘지 않았다. 프레스티지 가 연상된 것만 빼면. ;;
듀나, 단편의 벽을 깨다 표제작 용의이 를 본격적인 장편으로 보기엔 분량상 구조상 많이 미흡하지만, 단편의 틀을 깬 것만은 확실하니까, 추후 행보를 기대하게 해주는데 일단 의의가 있겠다. 앞에 수록된 세 편의 단편들은 잡지 등 다른 매체이 이미 발표되었던 작품들이라 신선미는 없지만, 듀나의 큰 특징인 정도 이상의 완성도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너네아빠어딨니? 의 고어틱한 유머는 상당히 흥미롭다. 주제면에서는 네 편 모두 기존의 동어반복에 가깝지만.
나노테크놀러지, 양자역학, 그리스 신들로 변주한 신들의사회 300 은 상대도 안 되는 근육덩어리 마초 신과 영웅들이 잔뜩 등장하고, 쿼런틴 이 얌전하게 느껴질 정도의 과격한 하드 SF적 전망이 펼쳐지고, 신들의사회 를 방불케하는 현학적인 훗까시들이 900 페이지 내내 쏟아져나온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 2008년에 나온다는 후속작 올림푸스 를 기대하자.
영문학의 향취가 가득한 오컬트펑크 본좌급 스팀펑크라고 띠지에는 붙어있지만, 흔히 생각하는 스팀펑크는 아니고, 오컬트의 어법으로 쓴 시간여행물이라고 하는 게 정확할 거 같다. 혹은, 스팀펑크란 꼭 증기기관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든, SF를 현대 과학기술 이외의 어떠한 다른 어법으로 든 다시 쓴 이야기라고, 우리의 스팀펑크관을 수정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여행물답게 기본적으로 플롯은 복잡하고, 런던 뒷골목이 배경인 소설답게 분위기는 우중충하고 혼란스러우며, 이집트 오컬트에 기반을 둔 세부 묘사는 지극히 이국적이다. 불꺼진 인도 음식점에서 바퀴벌레 스파게티를 먹는 기분이랄까.
고전의 아우라가 빛나는 SF-오컬트-판타지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대학교수 노먼은 어느날 무심코 아내의 화장대를 엿보았다가 아내가 마법과 주술을 믿는 마녀임을 알게 된다. 서구 근대 지식인답게 노먼은 합리주의와 이성주의로 아내를 설득/강압해서 모든 주술과 부적을 버리게 하는데 성공하지만, 그 직후 노먼은 다른 교수 부인들의 공격 주술 앞에 무방비로 놓이게 되고 아내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300여 쪽의 많지 않은 분량 속에서 사건은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이 일방통행으로 내달리고, 작가는 40년대-포스트 모더니즘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계몽의 불빛이 여전히 환했던 시기에 그 불빛에 가리워진 어둠과 그늘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경과 인물, 사건과 대사 등 작품 전반에 걸쳐 50년대 이전의 미국, 노스텔지어 시대의 향취가 매력적인, 시대를 초월한 고전.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SF의 질문 자폐증이 사전 예방 가능해진 근미래, 불행히도 예방 시술이 개발되기 전 태어난 루는 교육 지원을 통해 정상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만 배운 자폐인이다. 자폐증 특유의 패턴 분석 능력을 활용해 약학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편 취미 활동으로 펜싱을 배우고 있는 루는, 새로 개발된 자폐증 치료 기술을 시험 적용해보려는 회사의 압력과, 펜싱 동아리 안에서의 질투와 질시라는, 공사 양면의 문제 상황에 빠진다. 내면 상황을 기술할 수 있는, '개선된' 자폐증 화자의 시선은 우리에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이 무엇인지, 과연 있는지, 정말로 필요한지 자문하게 한다. 단순히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를 떠나 세계와 우주 안에 놓인 인간성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
크프우프크라는, 동일한 기호로 표상되는 서로 다른-우주의 시초부터 끝까지 다면적으로 변환하는-인물의 각기 다른 짤막한 이야기들은 모두 일정한 과학적 사실 혹은 가설의 짧은 인용 뒤 이 인용구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그야말로 환상적이고 환각적인 상상력의 나래를 활짝 펼쳐낸 다음, 천연덕스럽게도 다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귀결시키는 일정한 형식을 유지한다. 하지만 일정한 형식적 틀 안에서 이탈로 칼비노의 상상력과 문장력은 그야말로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데, 순문학과 장르 문학이 결국 궁극의 경지에 이르면 둘이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예랄까.
비늘마다 달콤한 우유를 감춘 달이라든지, 고속소비시대의 지구 위로 떨어져내리는 부스러진 달, 헛간에 웅크리고 앉은 거대한 태양풍 아내, 뭍으로 나간 젊은 것들을 꾸짖는 늙은 폐어 할아버지 등등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아기자기한 캐릭터들과 배경 사이로 로맨스와 철학, 위트와 해학과 음모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에코피아는 21세기의 어느 무렵, 캘리포니아 주 북부를 포함한 일부 지역이 미연방으로부터 탈퇴하여 독립한 국가의 이름이다. 그들의 연방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이유는 인간과 환경이 완벽하게 조화된 상태학적 이상향을 창조하기 위해서였다. 미국과 적대관계 속에서 20년 가까이 고립정책을 고집해온 이 나라가 마침내 뉴욕의 신문 기자 윌이엄 웨스턴을 최초의 손님으로 받아들인다. 작은 녹지공원들로 뒤덮인 미니 도시들, 여성이 지배하는 집권당인 '생존당'의 철두철미하고 급진적인 환경정책, 자연으로 환원될 수 없는 어떠한 물건도 만들어내지 않는 산업, 완전히 새로운 가치관에 의해 영위되는 자유로운 성(性) - 의혹과 갈등 속에서 웨스턴은 차츰 신세계의 참모습에 눈뜨게 된다.
..는 것이 출판사 홈페이지의 옮긴이의 말 일부.
그러니까 환경 문제는, 결국 우리의 삶과 존재 모두와 전면적으로 연관된 문제인 거다. 유토피아라는 고전적 주제를 환경 문제라는 근래의 주제 의식으로 변주해낸 이 소설은, 환경주의가 순수함을 의심받는-혹은 검증받는-2000년대에도 여전히 곰곰히 생각해볼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다.
연맹 이 정체불명의 적 을 맞아 싸우는 과정에서 잊혀져버린 랜딘 기지는 주변의 원주민 종족과 서로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며 고립된 세월 속에 점점 쇠퇴해간다. 하지만 닥쳐오는 혹한 앞에서 유례없이 대규모의 야만족 이동을 맞아 랜디의 주민들은 이웃 원주민 부족 테바와 동맹군을 결성하여 맞서 싸우려 하지만, 때마침 이루어진 양측의 젊은 남녀의 사랑으로 동맹은 결렬된다. 각개격파된 기지와 부족 생존자들에게 야만족의 공격은 계속되고...
르귄의 차분한 어조 속에 진행되는, 이 고난 속의 사랑 이야기는 결코 달콤하지도 격렬하지도 않지만 그렇지만 읽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하는 몇몇 부분들을 간직하고 있다. 르귄은 이 작품에서도 인간의 어리석음과 인간의 희망을 담담한 시선 속에 조용히 관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