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0.11.08 시어도어 스터전: 황금나선 외
  2. 2011.09.17 해변에서
  3. 2005.04.25 내이름은콘래드

시어도어 스터전: 황금나선 외

2020. 11. 8. 09:11 posted by zelaznied

시어도어 스터전 지음
박중서 옮김
현대문학, 2020.07.

★★★★

알았던 이름, 몰랐던 거장
시어도어 스터전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95년에 출간된 고려원미디어의 코믹SF걸작선 의 두 단편이 거의 처음이었고, 이어 98년에 대표 장편인 인간을넘어서 가 그리폰북스 010권으로 출간되었지만, 한 편의 장편과 두어 편의 단편만으로는 그의 작품 세계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기는 힘들었다. 오래도록 그는 오히려 보네거트의 킬고어 트라우트로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장편을 주로 쓰는 작가의 경우에는 힘들지만, 장편과 단편 고루 쓰거나 단편을 주로 쓰는 작가의 경우에는 단편선집이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데에는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13편의 중단편을 모은 이 작품선집은 우리가 몰랐던 스터전의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1950년대 미국 SF의 한 극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록작들 :

천둥과 장미 ★★★
47년작, SF로서의 재미보다는 원폭 이후 세계에 대한 문제 의식이 두드러진다. 삽입된 시를 포함해서 몇몇 문장에서 스터전의 문체의 특징을 볼 수 있다.

황금 나선 ★★★★★
54년작. 뒷표지에 언급된 '광활한 우주의 끝, 고독과 슬픔의 별'이란 아마도 이 작품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잭 밴스 혹은 존 발리 등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생태계의 외계 행성에서 삼대 이상 뻗어나가는 개척대의 기기묘묘한 운명이 펼쳐진다. 장르의 관습에 갇히지 않은 SF적 상상력과 비전이 그야말로 경이감을 주는 결말이 압권이다.

영웅 코스텔로 씨 ★★☆
53년작. 당대 미국 사회에 대한 신랄하고 재치있는 풍자물. 스터전은 SF의 본령에 충실한 작가이고, 따라서 인류나 우주 전체의 역사와 운명을 조망하는 대신 지구라는 조그만 행성의 미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한때에 너무 분노하고 슬퍼하는 모습은 다소 의아하지만, 그의 작품들의 희망과 슬픔들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왜 그리 절실하고 절절했는지는 천둥과장미 와 이 작품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비앙카의 손
47년작. 매혹적인 호러-판타지 소설. SF는 아니지만 스터전답게 기묘하게 아름답다.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재너두의 기술 ★★★☆
56년작. 스터전의 유토피아 SF. 다른 말이 필요할까? 르귄의 빼앗긴자들 과 이언 M. 뱅크스의 컬처시리즈, 딜레이니의 바벨-17 까지도 희미하게 호명하는 선구적인 작품. 디스토피아물이 SF의 악몽이라면 유토피아물은 SF의 백일몽일 것이나, 그러나 유토피아물만큼 작가의 사상을 투명하게 응집시키는 세부 장르도 없을 것이다. 

킬도저! ★★★
44년작. SF보다는 호러에 가깝다. 스티븐 킹의 크리스티나 혹은 맥시멈오버드라이브 등은 모두 여기서 뻗어나온 것이 아닐까? 살아 있는 기계들의 밤. 스터전이 하인라인과 가장 많이 겹쳐지는 지점이다. 실무 공학에서 나오는 감수성과 상상력의 성찬.

환한 일부분
55년작.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이성(異性) ★★
52년작. 생물학적으로는 말도 안되겠지만 살짝 하드보일드풍 전개가 좋다. 수록작들 전반에서 보이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 인류의 잠재력과 진보에 대한 전망은 일견 순진한 낙관으로 보이지만, 결말의 공생체에 대한 설정을 보면 역으로 얼마나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 아파하고 고민한 결과일까 싶어 안쓰럽기도 하다

〔위젯〕, 〔와젯〕, 보프 ★★★
55년작. 전체 틀로서 SF를 읽는 재미보다는 등장인물 각각의 심리적 드라마를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SF적 요소는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 보다도 조금 더 미미하달까.

그것
40년작. 흥미로운 호러 단편.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사고방식
53년작. 흥미로운 호러 단편.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바다를 잃어버린 사람 ★★★★★
59년작. 60년 이전에 이런 단편이 나올 수 있었다는, 실제로 나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감성은 SF의 가장 근본적인 지점ㅡ낙관주의, 도전정신, 모험과 탐험ㅡ인데 형식은 지극히 세련된 모더니즘ㅡ뉴웨이브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가능할까? 그러나 이 작품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느린 조각 ★★★
70년작. 아이디어는 살짝 고색창연하지만 주제의식은 여전히 힘차게 빛나고 있다.


해변에서

2011. 9. 17. 00:48 posted by zelaznied
 

네빌 슈트 지음
정탄 옮김
황금가지, 2011


우아하고 기품있는 인류 종말
북반구에서 벌어진 핵전쟁으로 애먼 남반구에 방사능 대기가 천천히 밀려온다. 고통스런 죽음까지 몇 달이나 남은 상황, 그 몇 달의 지연 때문일까. 서로 싸우다 자멸하는 북반구에 비해 태평하고 한가한 남반구 기질 때문일까. 레이 브래드버리의 유명한 단편처럼,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들은 최후의 순간 직전까지 대개들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잃지 않고 스스로 품위를 지킨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더 지독하게, 전쟁의 어리석음에 대한 공포와 종말에 대한 무거운 비탄을 불러 일으킨다.
과학적인 요소가 두드러지지 않지만 핵전쟁으로 인한 지구 종말 시나리오는 작품이 나온 시대가 시대인 만큼, 그리고 작가의 경력이 경력이니만치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종말을 앞둔 사람들의 심리와 사회의 변화상도 깊이 있고 눈여겨 볼만 하다.

재미 : 3.5
감동 : 4
SF   : 3


내이름은콘래드

2005. 4. 25. 10:26 posted by zelaznied
 
 


로저 젤라즈니 지음

곽영미, 최지원 옮김

시공사, 2005 (95년 나온 그리폰북스 001권의 재번역본)

 

별점 및 세부 점수는 구판 참고

 

젤라즈니의 힘!

바람의열두방향 혹은 밤을사냥하는자들 과 같은 아담한 판본으로 위의 표지만 봤을 때 받았던 부정적인 이미지는 상당히 감쇄되었다. 특히나 뒷표지의 주홍+연두의 상큼한 색 배합은 매력적. (그동안 젤라즈니는 왜 그리 검은 바탕으로만 나왔을까?)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SF작가, 로저 젤라즈니의 첫 장편 이라는 뒷표지 문구도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번역은 약간 갸우뚱. 재번역이 부딪히게 되는, 구번역과의 차별화와 원문 충실 사이의 딜레마에서 역시나 이 책도 비틀거린 느낌이다.

 

 

..어?거나 아직 못 읽으신 분들은 꼭 사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