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 흩어진 너희 몸들로

2015. 7. 6. 20:40 posted by zelaznied


필립 호세 파머 지음

안태민 옮김

불새, 2015



큰 이야기의 큰 시작

거대한 강이 흐르는 외계 행성에서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ㅡ네안데르탈인과 인류 멸망 직전 지구를 방문했던 외계인까지 포함해서ㅡ한꺼번에 부활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것이 미래인들의 거대한 실험이라는 사실이 차츰 밝혀지지만 실험의 목적과 이야기의 결말은 이 한 권에서 밝혀지지 않는다.

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야기로서 치명적인 약점이겠지만, 그래도 천일야화의 번역자 리처드 버턴이 앨리스의 모델 앨리스 부인의 팔짱을 끼고 네안데르탈과 외계인을 동료로 거느리고 괴링이 지배하는 노예제 사회에 뛰어든다는 설정, 음식과 의복을 무한정 해결해주는 화수분이 있다 해도 돌과 나뭇잎 뿐인 생태계에서 무한한 부활을 거듭하며 차츰 사회가 구성되고 문화가 생겨나는 과정, SF의 가장 핵심적인 인간상이라고 할, 미지와 무한의 세계 앞에서 불굴의 의지로 탐험에 도전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후속권을 기약할 수 없다 해도) 이 한 권만으로도 충분한 재미와 감흥을 준다고 하겠다.


재미 : 3.5

감동 : 2.5

SF  : 3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2015. 7. 6. 18:18 posted by zelaznied


김보영 지음


기적의 책, 2015



별들의 시간으로 떨어진 견우 직녀 이야기

김보영 님 특유의 치밀함이나 발상의 전환이 없는 것은 다소 아쉽지만, 간절한 어조와 안정적인 구성, 높은 완성도는 변함없는 소품이다.


재미 : 3

감동 : 2

SF  : 3

이 사람을 보라

2014. 1. 5. 09:26 posted by zelaznied


마이클 무어콕 지음

최용준 옮김

시공사, 2004



취향을 많이 탈, 뉴웨이브 종교 (SF)

SF적인 소재이자 소도구는 시간여행-타임머신이 유일하고, 소설의 초점은 가까운 미래의 (지금과 다를 바 없는) 현대 사회의 병폐 속에서 고통받던, 구세주 컴플렉스의 찌질한 주인공이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시간여행 정보 역설에 따라 (아직)이미 부여된(부여될) 길을 걷게 되었는가에 맞춰진다.

뉴웨이브 SF 답게 내적 독백과 의식의 흐름이 뒤엉킨 산만한 구성을 취하고 있고, 장르 SF로서 종교 SF나 시간여행 SF를 기대하는 독자들 뿐만 아니라 J. G. 발라드류의 화려한 이미지를 과시하는 뉴웨이브 SF를 기대하는 독자들의 예상마저도 뒤엎는, SF보다는 그냥 현대 소설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마 그런 점에서 뉴웨이브 SF들이 장르 안에서 욕 먹었고, 어쩌면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뉴웨이브 SF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종교의 현대적 의의에 관심이 있거나, 뉴웨이브 SF보다는 현대 소설에서 SF에 접근한 쪽(심지어 슬립 스트림 말고)에도 거부 반응 없는 독자들에게 강추. 그외에는 비추천.


재미 : 2

감동 : 3

SF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