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판 사나이

2013. 9. 23. 19:31 posted by zelaznied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안태민 옮김

불새, 2013



하인라인의, 그리고 SF의 출발점

스타십트루퍼스 나 여름으로가는문 , 혹은 달은무자비한밤의여왕 등의 흥미로운 스토리텔링과 유려한 나레이션, 매력적이고 현실감 있는 캐릭터 등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생명선 이라든가 길은움직여야한다 , 혹은 코벤트리 나 므두셀라의아이들 등으로 SF의 역사 속에서 하인라인의 시대적 위치를 어느 정도 감 잡은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흥미로울 수 있을지도.. "빛이여있으라"는 처참하리만치 조잡하고 투박하고, 생명선 이나 폭발 도 조금 낫지만 만만치 않고, 도로는굴러가야만한다 는 천박하리만치 정치적으로 편협하고 노골적이지만,

우주에 대한 동경이라는 SF의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감성이 날 것 그대로 들어있는 표제작 달을판사나이 나 이어지는 이야기인 위령곡 을 읽을 때에는 지구의푸른산 의 마지막 부분에서의 그, 살짝 소름 돋는 감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재미 : 3

감동 : 3

SF   : 3

해변에서

2011. 9. 17. 00:48 posted by zelaznied
 

네빌 슈트 지음
정탄 옮김
황금가지, 2011


우아하고 기품있는 인류 종말
북반구에서 벌어진 핵전쟁으로 애먼 남반구에 방사능 대기가 천천히 밀려온다. 고통스런 죽음까지 몇 달이나 남은 상황, 그 몇 달의 지연 때문일까. 서로 싸우다 자멸하는 북반구에 비해 태평하고 한가한 남반구 기질 때문일까. 레이 브래드버리의 유명한 단편처럼,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들은 최후의 순간 직전까지 대개들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잃지 않고 스스로 품위를 지킨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더 지독하게, 전쟁의 어리석음에 대한 공포와 종말에 대한 무거운 비탄을 불러 일으킨다.
과학적인 요소가 두드러지지 않지만 핵전쟁으로 인한 지구 종말 시나리오는 작품이 나온 시대가 시대인 만큼, 그리고 작가의 경력이 경력이니만치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종말을 앞둔 사람들의 심리와 사회의 변화상도 깊이 있고 눈여겨 볼만 하다.

재미 : 3.5
감동 : 4
SF   : 3


민들레 소녀

2011. 9. 16. 23:59 posted by zelaznied
 

로버트 영 지음
조현진 옮김
리젠, 2010


달콤하고 부드러운 소프트 소프트 SF

레이 브래드버리가 조금 더 부드러워진-브래드버리의 문명 비판과 비관을 버린-SF를 상상해보자. SF와 오 헨리 풍 미국 단편들 경계선에 살짝 놓인 SF를. 세 편 정도는 아예 SF로 분류할 수 없고, 나머지 수록작들도 SF의 밀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읽는 재미는 충분하다. (몇몇 부분의 번역이 투박해서 눈에 걸리지만)

민들레 소녀 : 시간 여행과 로맨스의 귀여운 결합. 서정적인 문장이 아름답다.

21세기 중고차 매장에서 :  브래드버리 혹은 프레드릭 브라운. 그 시절의 고풍스러움.

프라이팬 조종사 : 귀엽지만 덜렁거리는 판타지

팝콘 튀기는 TV : 다소 평면적인 문명비판 판타지

별들이 부른다 : 브래드버리, 브래드버리, 브래드버리. 우주에 대한 동경보다는 속물에 대한 혐오가 더 진하다.

시인과 사랑에 빠진 큐레이터 : 브래드버리, 브래드버리, 브래드버리(2) 속물에 대한 혐오를 고전 문학에 대한 칭송과 대조시킨 느낌은 살짝 키치스러울 정도.

당신의 영혼이 머물 자리 : 브래드버리, 브래드버리, 브래드버리(3) 속물 주인과 진정한 예술가 로봇 커플 이야기

과거와 미래의 술 : 알코올 중독의 어두운 터널을 가로지르는 판타지.

파란 모래의 지구 : 브래드버리, 브래드버리, 브래드버리(4) : 화성연대기 의 한 챕터가 노골적으로 떠오르는, 그러나 화성과 지구를 재미있게 뒤집어 놓은 재치있는 단편.

하늘에 새겨진 글자 : 네인생의이야기 의 화장실 유머 버전이랄까. 상상력이 재미있긴 하다.

약속의 별 : 이번에는 살짝 아서 클라크. 우주 개척과 소규모 공동체의 역사.

춤의 언어 : 짧지만 강렬한, 인류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포스트아포칼립스물.

붉은 학교 : 시계태엽오렌지 를 떠올리게 하는, 심리적 통제의 지옥도.

시간을 되돌린 소녀 : 초광속과 시간여행을 재치있게 이어붙인 SF 로맨스.

화강암의 여인 : 로저 젤라즈니 혹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계의 높은 산을 오르며 심리적 상처를 되씹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