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스팀펑크 동화
보다 간단하게는 청소년용 스팀펑크라고 하는 게 낫겠다. 보다 정확하게 첨언하자면, 팀 파워스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저패니메이션적인 의미에서의 통속적인 스팀펑크. 신자유주의의 알레고리스러운 도시진화론이라는 배경 아래 다소 평면적인 등장인물들이 활극을 펼치는데, 스토리 전개는 의외로 냉혹해서 주요 인물들이 제때 제때 가차없이 죽어나가고, 주류 이데올로기의 모순에 대한 소시민의 각성이 하드하게 그려진다. 현대 사회의 캐리커쳐라고나 할까.
마음은 차가운 무덤 : 젤라즈니 특유의 등장인물들이 그렇지만 다소 평이하게 움직인다. 인공 동면을 통한 무한한 불멸-신성의 획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쳐내지 못하는 인간적인 애욕의 유한함이란 꽤나 매력적인 주제인데도.
가만히 있어, 루비 스톤 : 젤라즈니도 이런 평작을 쓸 때가 있었다.
하프잭 : 젤라즈니에게 신성의 핵심은 불멸이며 불멸은 아광속 비행이나 냉동 수면 등을 통해 과학적으로 획득될 수 있었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평범한 인간도 3천년이나 3만년 쯤 묵히면 신이 못 될 게 또 무언가. 양을 통해 질을 획득할 수 있다는 미국인 특유의 물질주의적 낙천주의? 짧은 소품이지만 젤라즈니의 작품 세계 전반을 조망할 수 있을 듯.
캐멀롯의 마지막 수호자 : 흘러가버리는 시간에 대한 페이소스로 가득 찬, 몇 번을 읽어도 감동적인, 젤라즈니 특유의 판타지. 그러나 그 핵심에는 여전히 SF가 도사리고 있다.
그림자 잭 : 살며시 앰버 가 연상되기도 하는, 그러나 독립적으로 재미있고 감동적인 중편. 젤라즈니의 작품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트릭스터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젤라즈니적 트릭스터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구동토 : 형식 상의 실험적 시도가 이채로운, 그러나 내용 상으로는 전형적인 젤라즈니 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