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의 날개를 달고 비상하는 로맨틱 SF 인접 행성에서 불규칙한 주기로 침입해오는 외계 생명체 사포에 맞서 싸우는 외계 행성 퍼언의 용기사들의 모험담. 오랜 평화기 속에서 경계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일깨우는 고군분투가 펼쳐지는 1권부터 대규모 재난 앞에서도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탐하는 사람들, 위기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의연히 일어서는 사람들, 시간의 흐름을 인정하지 않고 구습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사람들, 다양한 인간 군상이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진다. 2권, 3권에서는 소설적 긴장감이 1권보다 약해지지만, 그 빈 자리를 SF 본연의 경이감으로 채워버리는, SF, 판타지, 모험물이자 심지어 정치적으로 올바른 로맨스까지 장르의 벽과 벽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읽을거리이다.
최후의 날 그후의 황폐함과 희망에 대한 SF 상상력의 향연 50년대를 기점으로 서구 SF는 히로시마-나가사키 이후 과학 기술에 대해 더이상 낙천적일 수 없게 되었을 뿐아니라 인류의 미래 자체에 대해서 결코 낙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포스트 아포칼립스-이 단편집에서는 메가워 이후라는 단어를 추천하고 있지만-라는 서브 장르가 현대 SF에서 얼마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 50년대 이후 그야말로 쏟아져나온 포스트 아포칼립스물들 중 수작들만 선별한 이 작품집의 재미와 감동은 각별하다.
[#M_ more.. | less.. |01. 세상을 파는 가게(The Store of the Worlds) - 로버트 셰클리 ★★★ 예전에 읽은 작품이지만, 다시 읽어도 좋았다. 멸망 이전의 세계에 대한 노스텔지어 속에는 어쩔 수 없이 멸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02. 거대한 섬광(The Big Flash) - 노먼 스핀래드 ★★ 사이키델릭록의 묘사는 좋았고,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의 편집증적 악몽과의 결합도 절묘했지만, 그래도 록밴드에서 세계 멸망으로 이어지는 건 너무 비약적이지 않나? -.-
03. 현대판 롯(Lot) - 워드 무어 ★★★★ 멋졌다. 어쩔 수 없이 주인공에 이입되어서, 조마조마하면서 읽어나갔는데, 그래서, 답답한 마누라와 멍청한 애새끼들 때문에 결국 실패하는 결말로 끝날 거라 미리 짐작하고, 그러게, 처음부터 그런 여자를 고르는 게 아니었지, 그게 다 업보야, 끊임없이 되뇌면서 읽어나가다가 결말에서 뒤집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무릎 쳤다. 오오, 원제가 그런 뜻으로 쓰인 거였고만. 아아, 통쾌해라. :D 물론, 냉정하고, 정치적으로 공정하게 생각해보자면, 비극적인 결말이고,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은-혹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살아남는 주인공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핵전쟁을 불러오는 남성성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거라고 볼 수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그러기엔 작가가 아내와 자식들을 너무나 생생하고 짜증나게 잘 그려내서.. ;-)
04. 바퀴(The Wheel) - 존 윈덤 ★★★ 정갈한 소품. 핵전쟁 이후, 기술에 대한 거의 중세적 죄악시는 너무 진부하지만, 그래도 플롯 자체가 너무 호소력 있다. ㅠ.ㅠ)b
05. 터미널 해변(The Terminal Beach) - J. G. 밸러드 ★★★ 발라드 특유의, 이미지의 향연. 글을 읽는 게 아니라 마치 스틸 사진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실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이해하는 것보다는 느끼는 게 효과적일 작품.
06. 내일의 아이들(Tomorrow's Children) - 폴 앤더슨 ★ 개인적으로 폴 앤더슨을 싫어하는 이유들이 집약되어서 나타난 작품. 거시적인 문제를 미시적으로 풀어낸 건 좋지만, 등장 인물들은 결국 히스테리컬한 종이 인형들에 불과하다. -_-
07. 누가 상속자인가(Heirs Apparent) - 로버트 애버나시 ★★★ 농경 대 유목으로의 회귀는 꽤 설득력 있는 전망인데, 너무 미국적 관점에서 본 냉전의 반영이라 좀 심기가 불편했다. 뭐, 당시-인민의 태양 스탈린 동무께서 영도하셨던 소련이 실제로 그렇긴 했겠지만. ~_~ (그래도 그 맞은편에, 그래서 멋져보이게 미국 영웅을 세워놓은 건 아무래도 좀 그렇단 말이지. _-_ )
08. 바빌론의 물가에서(By the Waters of Babylon) - 스티븐 베네 ★★★ 그 당시부터 장르 바깥에서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게 너무 부럽다. ㅠ.ㅠ
09. 부드러운 비가 올 거야(There Will Come Soft Rains) - 레이 브래드버리 ★★★★ 사실, 화성연대기 의 그 길고 아련한 스토리 속에서 봤을 때만큼 그렇게 감명 깊진 않았지만, 별도로 떼어놓고 봐도 결코 처지지 않는구나.
10. 시카고 어비스 역으로(To the Chicago Abyss) - 레이 브래드버리 ★★★ 전형적인 레이 브래드버리 단편. 너무나 브래드버리적인.
11. 루시퍼(Lucifer) - 로저 젤라즈니 ★★ 사실 젤라즈니 단편들 중에선 좀 단조롭고 처지는 편이지 않나? -.-
12. 동쪽으로 출발!(Eastward Ho!) - 윌리엄 텐 ★★ 인디언과 흑인들에 대한 죄의식과 그에서 비롯된 도착적 피해 의식이 종말 이후라는 배경을 빌미로 노골적으로 발현된 작품. 뭐, 보기에 따라선 단순한 전복적 상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불쾌할 따름이었다.
13. 성聖 재니스의 향연(The Feast of Saint Janis) - 마이클 스완윅 ★★★
14. "그대를 어찌 잊으리, 오 지구여..."("If I Forget Thee, Oh Earth...") - 아서 클라크 ★★★★ 역시나 아서 클라크. ;ㅁ;
15. 소년과 개(A Boy and His Dog) - 할란 엘리슨 ★★★★ 명불허전. ㅠ.ㅠ)b 결말에서 주인공의 선택은 현대판롯 과도 겹쳐지는데, 그보다는 아기자기한 그야말로 SF적 소품들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ㅁ;
라이트노벨의 간판 아래 나온 하드-보일드-SF 속류 사이버펑크의 전형적인, 첨단 기술과 첨단 범죄가 공존하는 미래 도시 마르두크에서 소녀 창녀 발롯은 도박사 범죄자 셸에게 죽기 직전 닥터 이스터와 외프코프의 해결사 2인조에게 구조된다. 셸이 그동안 저지른 범죄들을 처벌하기 위한 증인으로 생존시키기 위해 닥터 이스터와 외프코프는 죽음 직전의 발롯의 신체를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서 개조하는데... 각종 근미래 기술 및 도구들은 하드SF적인 감각이 강한데, 플롯 전반은 작가의 취향-미소녀, 잔혹범죄, 도박, 총격전-이 너무 강해서 장르적 정체성이 조금 불투명하다. 게다가 일본 대중문화 특유의 자폐적 정서마저 물씬하니 서사보다는 소도구들 감상하는 기분으로 보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