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에 해당되는 글 58건

  1. 2020.11.09 우주의 집
  2. 2020.11.08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3. 2020.11.08 시어도어 스터전: 황금나선 외
  4. 2020.11.08 얼마나 닮았는가
  5. 2019.10.05
  6. 2016.07.04 체체파리의 비법
  7. 2015.07.07 내해의 어부
  8. 2015.07.07 다가올 그날의 이야기
  9. 2015.07.07 세상의 생일
  10. 2015.07.06 캔자스의 유령

우주의 집

2020. 11. 9. 21:15 posted by zelaznied

문이소, 고호관, 남유하, 최영희, 윤여경 지음

사계절, 2020.07.

★★★

얇지만 충실한 SF 단편집
한낙원 과학소설상 수상작가 단편집. 아동/청소년 대상이라는 선입견이 무색하게 충실한 한국 창작 SF 단편집이다.

수록작들:

완벽한 꼬랑내 ★★★
다소 유치한 작명 등이 아쉽지만 청소년들이라면 오히려 재미있어 할 무난한 멍멍이 SF.

우주의 집 ★★★★
아서 클라크가 썼을 법한 고전적이고 정석적인 청소년 우주 SF.

실험도시 17 ★★☆
다큐멘터리적인 구성은 테드 창 이래로 식상하지만.

묽은것 ★★★★
청소년 SF의 한계를 뛰어넘은 수작. SF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하지만 최근의 국내외 경향을 보자면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많은 독자들이, 작가들이 읽기를 희망하게 되는 소설. 한국 장르 소설의 하나의 테두리를 돌파하는 작품이다.

문이 열리면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2020. 11. 8. 12:03 posted by zelaznied

N.K.제미신 지음
이나경 옮김
황금가지, 2020.07.

★★★★

SF와 판타지의 영역은 끊임없이 갱신 확장된다고 이야기하는 단편집
부서진대지 3부작 중 국내에 출간된 2권을 이미 읽었다면 제미신의 창작 경향은 대충 파악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이 단편집은 그러한 경향, 방향성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이야기가 가능한지 보여주는 풍요로운 성찬이 될 것이다. 지질학에 기반한 탄탄한 SF에서 결국 판타지로 나아가던 부서진대지 1,2부에서처럼 SF보다는 판타지적 경향들이 더 짙지만, 양자의 구별이 무색해진 작금의 추세 속에서는 큰 흠은 되지 않는다. 류츠신-켄 리우-이윤하 등의 동아시아 SF와 함께 버틀러-제미신의 아프리칸 SF 또한 얼마나 SF/판타지의 경계를 확장하고 다양성을 공급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수록작들: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 ★★★☆
오멜라스에 대해 어둡게 빛나는 거울상.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개인의 양심을 이야기하는 오멜라스를떠나는사람들 이 다소 갑갑하게 느껴졌다면 제미신의 단편에서는 좀더 숨이 트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오히려 더...

위대한 도시의 탄생 ★★
예술과 근대, 도시에 대한 어반 판타지. 자체적인 완결성이 부족해 보여 아쉽다.

붉은 흙의 마녀 ★★★★★
최상급의 단편 환상소설. 주제나 구성이나 문장이나 모자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이 한 편만으로도 단편집 전체를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연금술사 ★★★★
마찬가지로 뛰어난 환상소설. 요리와 주술과 마법 사이에 누구나 납득할 공통점에 기반한 상상력과 서술이 백미이고, 마지막 장면은 르귄의 파리의4월 이 떠오르기도 한다.

폐수엔진 ★★★★
매력적인 대안적 스팀 펑크. 단편이지만 중편 SF에 필적하는 재미와 밀도를 보여준다.

용구름이 뜬 하늘 ★★★
르귄 느낌의 단편. 대개는 키리냐가 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트로이 소녀 ★★★☆
웹 2.0... 혹은 모바일 웹 시대의 포스트 사이버펑크. 어플리케이션 소녀는 무슨 꿈을 꿀까?

졸업생 대표 ★★★
포스트 휴머니즘 시대의 디스토피아물. 

이야기꾼 대리인 ★★☆
풍자적이고 오싹한 메르헨 호러 판타지.

천국의 신부들 ★★★☆
에일리언 혹은 블러드차일드 , 첫번째접촉 이야기에서 재생산을 다룬 것이 드물지는 않겠지만 이슬람 전승을 통해서 새롭게 다듬어 낸 점은 꽤 흥미롭다.

평가자들 ★★☆
다소 늘어지고 산만한, 옥타비아 버틀러도 연상되는, 호러 SF 단편.

깨어서 걷기 ★★★
다시 블러드차일드 와, 하인라인의 퍼펫마스터 . (더하기 불사주식회사 ?) 결론은 약간 비약처럼 느껴졌지만, 나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댄서 ★★★
이슬람이라고 하기도 지치고 기독교든 유교든 그저 원리주의 가부장적 어떤 종교든지 빠져들 수 있는 디스토피아물.. 여러 모로 많은 층위로 읽힐 수 있는, 그러나 별로 두껍지 않은 엽편. 두껍지 않은데 여러 층위로 읽을 수 있게 하는 현실이 너무 혐오스럽다.

퀴진 드 메므아 ★★★★★
추억은 결코 시각적이지 않다. 가장 직접적인 것은 후각이고, 미각도 또한 거의 마찬가지로 그럴 것이다. (그래, 프루스트.) 결코 추억이라 부를 수 없는, '가슴이 꽉 메어' 오게 하고,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이게 하고,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럽도록 하는 그런 기억들, 지나간 시절의 아물지 않은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상처들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 대한 우아하면서도 절절한 답변.

스톤헝거 ★★
부서진대지 시리즈를 읽지 않았다면 어리둥절해질, 비자립적인 단편.

렉스강가에서 ★★★
유니콘변주곡 이 살짝 떠올랐는데, 매력적인, 나른한 판타지.

수면 마법사 ★★★★
이집트 제국 마법 판타지. 제미신은 손 대는 것마다 서브 장르를 만들어내는 걸까? 아니면 제미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신조어들이, 새로운 표딱지들이 필요한 걸까? 다소 예술주의적이지만 흥미로운 단편.

헤노시스 ★★
예술과 불멸에 대한 산만한 엽편. 

너무 많은 어제들, 충분치 못한 내일들 ★★★
반복되는 시간이란 흔한 소재인데 인터넷 네트워크와 인간 관계에 대한 고찰로 연결시킨 점은 좋았다.

유트레인

비제로 확률 ★★★
머피의 법칙을 가장 잘 소설화한 단편이랄까. 일회성의 예측불가능한 삶에 대한 가장 정직하고 솔직한 신나는 단편 환상소설.

잔잔한 물 아래 도시의 죄인들, 성자들, 용들 그리고 혼령들 ★★★★
담담한 만큼 더 절절한 단편 환상소설.


시어도어 스터전: 황금나선 외

2020. 11. 8. 09:11 posted by zelaznied

시어도어 스터전 지음
박중서 옮김
현대문학, 2020.07.

★★★★

알았던 이름, 몰랐던 거장
시어도어 스터전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95년에 출간된 고려원미디어의 코믹SF걸작선 의 두 단편이 거의 처음이었고, 이어 98년에 대표 장편인 인간을넘어서 가 그리폰북스 010권으로 출간되었지만, 한 편의 장편과 두어 편의 단편만으로는 그의 작품 세계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기는 힘들었다. 오래도록 그는 오히려 보네거트의 킬고어 트라우트로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장편을 주로 쓰는 작가의 경우에는 힘들지만, 장편과 단편 고루 쓰거나 단편을 주로 쓰는 작가의 경우에는 단편선집이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데에는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13편의 중단편을 모은 이 작품선집은 우리가 몰랐던 스터전의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1950년대 미국 SF의 한 극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록작들 :

천둥과 장미 ★★★
47년작, SF로서의 재미보다는 원폭 이후 세계에 대한 문제 의식이 두드러진다. 삽입된 시를 포함해서 몇몇 문장에서 스터전의 문체의 특징을 볼 수 있다.

황금 나선 ★★★★★
54년작. 뒷표지에 언급된 '광활한 우주의 끝, 고독과 슬픔의 별'이란 아마도 이 작품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잭 밴스 혹은 존 발리 등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생태계의 외계 행성에서 삼대 이상 뻗어나가는 개척대의 기기묘묘한 운명이 펼쳐진다. 장르의 관습에 갇히지 않은 SF적 상상력과 비전이 그야말로 경이감을 주는 결말이 압권이다.

영웅 코스텔로 씨 ★★☆
53년작. 당대 미국 사회에 대한 신랄하고 재치있는 풍자물. 스터전은 SF의 본령에 충실한 작가이고, 따라서 인류나 우주 전체의 역사와 운명을 조망하는 대신 지구라는 조그만 행성의 미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한때에 너무 분노하고 슬퍼하는 모습은 다소 의아하지만, 그의 작품들의 희망과 슬픔들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왜 그리 절실하고 절절했는지는 천둥과장미 와 이 작품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비앙카의 손
47년작. 매혹적인 호러-판타지 소설. SF는 아니지만 스터전답게 기묘하게 아름답다.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재너두의 기술 ★★★☆
56년작. 스터전의 유토피아 SF. 다른 말이 필요할까? 르귄의 빼앗긴자들 과 이언 M. 뱅크스의 컬처시리즈, 딜레이니의 바벨-17 까지도 희미하게 호명하는 선구적인 작품. 디스토피아물이 SF의 악몽이라면 유토피아물은 SF의 백일몽일 것이나, 그러나 유토피아물만큼 작가의 사상을 투명하게 응집시키는 세부 장르도 없을 것이다. 

킬도저! ★★★
44년작. SF보다는 호러에 가깝다. 스티븐 킹의 크리스티나 혹은 맥시멈오버드라이브 등은 모두 여기서 뻗어나온 것이 아닐까? 살아 있는 기계들의 밤. 스터전이 하인라인과 가장 많이 겹쳐지는 지점이다. 실무 공학에서 나오는 감수성과 상상력의 성찬.

환한 일부분
55년작.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이성(異性) ★★
52년작. 생물학적으로는 말도 안되겠지만 살짝 하드보일드풍 전개가 좋다. 수록작들 전반에서 보이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 인류의 잠재력과 진보에 대한 전망은 일견 순진한 낙관으로 보이지만, 결말의 공생체에 대한 설정을 보면 역으로 얼마나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 아파하고 고민한 결과일까 싶어 안쓰럽기도 하다

〔위젯〕, 〔와젯〕, 보프 ★★★
55년작. 전체 틀로서 SF를 읽는 재미보다는 등장인물 각각의 심리적 드라마를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SF적 요소는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 보다도 조금 더 미미하달까.

그것
40년작. 흥미로운 호러 단편.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사고방식
53년작. 흥미로운 호러 단편.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바다를 잃어버린 사람 ★★★★★
59년작. 60년 이전에 이런 단편이 나올 수 있었다는, 실제로 나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감성은 SF의 가장 근본적인 지점ㅡ낙관주의, 도전정신, 모험과 탐험ㅡ인데 형식은 지극히 세련된 모더니즘ㅡ뉴웨이브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가능할까? 그러나 이 작품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느린 조각 ★★★
70년작. 아이디어는 살짝 고색창연하지만 주제의식은 여전히 힘차게 빛나고 있다.


얼마나 닮았는가

2020. 11. 8. 08:07 posted by zelaznied

김보영 지음 

아작, 2020.10. 

★★★★★ 

지난 10년간 한국SF에서 가장 멀리 나간 이야기들
물론 또, 듀나도 있지만, 각각 방향이 다르니 서로 얼마나 더 멀리 나갔는지 비교할 수는 없다. 듀나가 보다 보편적인 SF로서 멀리 나갔다면 김보영은 보다 개별적인 방향으로, 한국 SF의 가능성을 확장했다고 할 수 있겠다.
2009년부터 2020년까지 쓴 단편들을 묶은 이 단편집은, 그러니 지난 10년간 한국 SF가 몇 개의 축에서 그 영역을 확장해나간 기록이자 그 결과물로서의 하나의 지도라고 할 수 있겠다.

수록작:

엄마는 초능력이 있어
김보영 SF의 기본 얼개를 잘 보여주는 엽편. 탄탄한 과학적 설정이 SF의 상상력 속에서 어떻게 시적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 일견 차가워보이는 과학적 진술들이 어떻게 삶의 감정들을 건드릴 수 있는지 볼 수 있다.

0과 1 사이
지난 10년간 발표된 한국 SF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 10년의 세월을 통해 시의성을 넘어 고전으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냈다.

빨간 두건 아가씨

고요한 시대

니엔이 오는 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한국형 초인물이라는 질문에 대한 모범 정답. '한국형', '한국적인' 등의 라벨에 대한 갑론을박은 영원하겠지만, 이 작품이 품은 페이소스와, 이 작품이 던지는 문제의식은 2014년 4월을 전후로 한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 없이는 말할 수 없을 것이며, 그러나 그럼에도 역시나 이후로 지나왔으며 앞으로 지나갈 세월의 무게를 온전히 견뎌낼 힘 또한 가지고 있다.

로그스 갤러리, 종로

걷다, 서다, 돌아가다
엄마는초능력이있어 와 비슷한 말을 할 수 있겠다. 별들의 반짝임을 눈물의 반짝임으로 되비쳐주는 엽편.

얼마나 닮았는가
현시점에서 김보영 SF가 가장 멀리까지 나가 이룬 성취. 이 작품은 전설이 아니라 신화가 될 것이다.

같은 무게


2019. 10. 5. 09:03 posted by zelaznied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엘리, 2019.05.


★★★☆


테드 창의 두 번째 중단편집


2002년에 출간된 당신인생의이야기 이후 17년 만에 출간된 두 번째 중단편집이다. 첫 중단편집의 충격은 기대하기 힘들지만(충격은 대개 처음에만 오는 법이고, 소프트웨어객체의생애주기 외에도 이런 저런 공식/비공식적인 경로로 국내에 이미 소개된 작품들이 상당수 포함된 탓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견실한 SF들이 수록되어 있다.


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

플롯이 매우 정교하고 마지막의 파토스가 효과적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으로는 진부한 결정론적 시간여행물의 재탕이라는 점이 아쉬운 작품이다. 약간 비약이지만 테드 창의 근작들은 자칫하면 진부한 도덕극으로 굴러떨어질 아슬아슬함이 엿보인다.


2. 숨 ★★★★★

일단 세계-우주 자체가 너무 압도적이고, 그 우주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압도적이며, 그 현상에 따라 주인공이 일으키는 사건이 너무 압도적이고, 사건의 결과 다다르는 결말의 결론이 너무 압도적인 문장으로 써져서 뭐라고 할 수가 없다. 다만 압도될 수밖에. 메시지는 단순한 도덕 설교의 재탕에서 벗어나 실존적이고, SF만의 방식으로만 도출되었기에 완벽하고 아름답다. 되돌아 보면 앞의 단편선에서는 일흔두글자 정도만이 떠오른다.


3. 우리가 해야 할 일 ★★★

주제와 형식과 표현과 결말의 합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짧은 만큼 더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


4.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5.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

모든 것이 기괴했던 서구 근대의 기괴했던 육아에 대한 글. 기계와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글. 의도와 결과 사이의 아이러니ㅡ실험 관찰이 세계에 대해서 보다 그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줄 뿐이라는ㅡ에 관한 글.


6.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

언어와 의식과 기억과 문화에 대한 아름다운 작품. 네인생의이야기 로 대표되는, 세계에 대한 사변을 개인의 드라마로 끌어오는 테드 창 특유의 작법이 잘 살아 있다. 객관적 진실과 주관적 기억 사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비극을 근미래 아버지와 딸 사이의 갈등 속에서는 객관적 진실의 편을 들고, 중간 중간 삽입된, 음성언어에서 문자언어로 전이된 아프리카 소년의 체험에서는 오히려 주관적 기억의 편을 들어주며 독자들로 하여금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숙고해보도록 이끈다. 새로운 테크놀러지가 개인과 공동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지에 대한 탐구로서 SF에 대한 작가의 지론이 잘 형상화된 작품이다.


7. 거대한 침묵 ★★☆

테드 창의 작품들 중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파토스에 경도된 엽편. 그렇지만 고독과 단절의 심연을 건너려는 절절한 독백은 마음을 울린다.


8. 옴팔로스 ★★★★

표면적으로는 0으로나누면 과 비슷한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의 신념과 지식에서 벗어난 현상을 발견했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믿었던 질서와 원리가 모두 무너지고 의도 없고 목적 없는 냉혹한 우주에 던져진 인간은 무엇을 통해 방향을 설정하고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 문제는 다시 자유의지의 문제로 발전한다. 테드 창의 제2기라고 해야할 이번 20년 동안 집요하게 천착한 주제다. 주제에 맞게 완전히 새로운 원리로 돌아가는 우주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다시 개인의 극적인 체험과 관점의 변화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표제작 숨 과 더불어 이 중단편선에서 테드 창에 대한 기존의 기대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다.


9.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아이디어가 재미있고 플롯은 정교하고 치밀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파토스에 기댄 드라마일 뿐이라는 점이 아쉽다. 평행우주라는 설정을 빌려 테드 창은 의도와 결과 사이의 차이와 이를 통해 자유의지에 대한 질문을 또다시 던지는데, 평행우주 혹은 다중우주 속 또다른 나가 맞게 되는 결말을 알게되는 사회에서의 사회적 변화가 흥미롭기는 하지만, 초점은 개개인이 맞닥뜨리는 작은 일화들에 집중되어 있다. 

체체파리의 비법

2016. 7. 4. 19:58 posted by zelaznied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이수현 옮김

아작, 2016


★★★★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SF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SF들을 성정치적 관점에서만 읽는 것은 분명히 편협한 독서일 것이다. 하지만  2016년 현재 한국 사회는 그런 독법이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덧없는존재감 과 비애곡 은 SF만으로서도 훌륭한 작품이지만 우리는 체체파리의비법 과 휴스턴,휴스턴,들리는가 를 읽으며 지금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게 과연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 모두를 괴롭히고 있는 것인지 직시해야만 한다.


재미 : 3

감동 : 3

SF   : 4

내해의 어부

2015. 7. 7. 21:40 posted by zelaznied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시공사, 2014



환상소설과 SF가 뒤섞인 단편집

그렇지만 환상소설로 분류해야 할 작품들이 훨씬 더 많고, SF의 농도는 옅다 못해 희미하다. 르 귄이 원래 좀 그런 편이긴 하지만, SF를 기대하며 펼쳤다가는 실망이 클 듯. 하지만 쇼비이야기 부터 시작되는 (앤서블 아닌) 순간이동물 연작 중 마지막 편이자 표제작인 내해의어부 는 수많은 시간여행물(중에서도 또 수많은 시간여행 로맨스들) 중에서 특기할 만한 작품.


고르고니드와 한 최초의 접촉 

뉴턴의 잠 

북면 등반 

상황을 바꾼 돌 

케라스천 

쇼비 이야기 

가남에 맞춰 춤추기 

또 다른 이야기 혹은 내해의 어부 

다가올 그날의 이야기

2015. 7. 7. 20:30 posted by zelaznied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최윤영 옮김

초록달, 2014



22세기 런던

쥘 베른에게 20세기파리 가 있다면 웰즈에게는 다가올그날의이야기 가 있다. 두 작품 모두 자본주의 경제가 고도로 발전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젊은 낭만주의자를 주인공으로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아내는데, 개인적으로 웰즈를 베른보다 훨씬 높이 평가하지만, 두 작품은 나란히 놓기 창피할 정도로 웰즈가 훨씬 처진다. 플롯은 개연성이 한참 결핍되어 있고, 미래 사회는 진부하고 고루하고 평면적이며, 사건들은 주제를 잘 떠받치지 못하고 기우뚱거린다. 뒤에 덧붙은 단편 세 편이 (모두 이미 번역된 적 있지만) 훨씬 재미있다.


재미 : 2

감동 : 0

SF  : 1

세상의 생일

2015. 7. 7. 18:57 posted by zelaznied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시공사, 2015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직은 르귄을 아는 것이 아니다

가장 르귄적인 단편들인 세그리의사정 , 고독 , 세상의생일 부터 가장 르귄적이지 않으면서도 결국엔 르귄적인, 순도 높은 SF 중편 잃어버린천국들 까지,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는 아직 르귄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카르히데에서 성년이 되기 

세그리의 사정 

선택하지 않은 사랑 

산의 방식 

고독 

옛음악과 여자 노예들 

세상의 생일 

잃어버린 천국들 

캔자스의 유령

2015. 7. 6. 21:47 posted by zelaznied


존 발리 지음

안태민 옮김

불새, 2015



존 발리의 기묘한 우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50년대와 60년대 사이의 미국 SF의 경계선은 존 발리가 긋지 않았을까. 고색창연한 외계 풍경(달, 화성, 수성), 구식 컴퓨터, 미지의 원소와 외계 기술 이론 등의 배경과 요소들이 조합되어 나타나는 사회와 인물의 모습은 전위적일 정도로 현대적이다.두 번째 중단편집 잔상 쪽 수록작이 더 좋지만, 존 발리의 개성적인 작품 세계에 친숙해지는 데에는 이쪽부터 읽는 것도 좋아 보인다. 


캔자스의 유령 ★★★
공습 ★★
역행하는 여름 ★★
블랙홀, 지나가다 ★★★
화성의 왕궁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