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287건

  1. 2020.11.10 사소한 기원
  2. 2020.11.09 우주의 집
  3. 2020.11.08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4. 2020.11.08 머더봇 다이어리: 인공상태
  5. 2020.11.08 시어도어 스터전: 황금나선 외
  6. 2020.11.08 드래곤 펄
  7. 2020.11.08 얼마나 닮았는가
  8. 2019.10.05
  9. 2019.10.05 별의 계승자5: 미네르바의 임무
  10. 2019.10.04 식스 웨이크

사소한 기원

2020. 11. 10. 23:30 posted by zelaznied

앤 레키 지음
신해경 옮김
아작, 2020.07.

★★★

같은 우주, 다른 방향의 이야기
라드츠 제국 3부작을 읽었다면 익숙한 분위기가 친숙하겠지만, 읽지 않았더라도 읽기 나쁘지 않다. 오히려 3부작과는 이야기의 방향성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이미 읽은 선입견이 감상을 방해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개인적인 원한이 우주 전체의 변혁으로 이어졌던 3부작과 달리 오히려 세계의 변혁 속에서 개인적인 은원이 풀려나가는 이야기는 호오가 갈릴 여지가 없지 않다. 개그와 재치가 없지 않지만 약간은 뜬금없고, 인물들 간의 갈등과 드라마가 중심이다보니 SF적인 재미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작중 배경을 짧은 역사 속에서 전통에 집착하는 미국 사회 자체에 대한 풍자와 냉소로 읽으면 다르겠지만, 반대로 읽으면 미국 SF의 타자에 대한 희화화와 폄하의 연장선으로 생각되어 불편한 지점도 없지 않다.

재미: 3.5
감동: 3
SF  : 3


우주의 집

2020. 11. 9. 21:15 posted by zelaznied

문이소, 고호관, 남유하, 최영희, 윤여경 지음

사계절, 2020.07.

★★★

얇지만 충실한 SF 단편집
한낙원 과학소설상 수상작가 단편집. 아동/청소년 대상이라는 선입견이 무색하게 충실한 한국 창작 SF 단편집이다.

수록작들:

완벽한 꼬랑내 ★★★
다소 유치한 작명 등이 아쉽지만 청소년들이라면 오히려 재미있어 할 무난한 멍멍이 SF.

우주의 집 ★★★★
아서 클라크가 썼을 법한 고전적이고 정석적인 청소년 우주 SF.

실험도시 17 ★★☆
다큐멘터리적인 구성은 테드 창 이래로 식상하지만.

묽은것 ★★★★
청소년 SF의 한계를 뛰어넘은 수작. SF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하지만 최근의 국내외 경향을 보자면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많은 독자들이, 작가들이 읽기를 희망하게 되는 소설. 한국 장르 소설의 하나의 테두리를 돌파하는 작품이다.

문이 열리면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2020. 11. 8. 12:03 posted by zelaznied

N.K.제미신 지음
이나경 옮김
황금가지, 2020.07.

★★★★

SF와 판타지의 영역은 끊임없이 갱신 확장된다고 이야기하는 단편집
부서진대지 3부작 중 국내에 출간된 2권을 이미 읽었다면 제미신의 창작 경향은 대충 파악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이 단편집은 그러한 경향, 방향성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이야기가 가능한지 보여주는 풍요로운 성찬이 될 것이다. 지질학에 기반한 탄탄한 SF에서 결국 판타지로 나아가던 부서진대지 1,2부에서처럼 SF보다는 판타지적 경향들이 더 짙지만, 양자의 구별이 무색해진 작금의 추세 속에서는 큰 흠은 되지 않는다. 류츠신-켄 리우-이윤하 등의 동아시아 SF와 함께 버틀러-제미신의 아프리칸 SF 또한 얼마나 SF/판타지의 경계를 확장하고 다양성을 공급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수록작들: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 ★★★☆
오멜라스에 대해 어둡게 빛나는 거울상.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개인의 양심을 이야기하는 오멜라스를떠나는사람들 이 다소 갑갑하게 느껴졌다면 제미신의 단편에서는 좀더 숨이 트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오히려 더...

위대한 도시의 탄생 ★★
예술과 근대, 도시에 대한 어반 판타지. 자체적인 완결성이 부족해 보여 아쉽다.

붉은 흙의 마녀 ★★★★★
최상급의 단편 환상소설. 주제나 구성이나 문장이나 모자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이 한 편만으로도 단편집 전체를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연금술사 ★★★★
마찬가지로 뛰어난 환상소설. 요리와 주술과 마법 사이에 누구나 납득할 공통점에 기반한 상상력과 서술이 백미이고, 마지막 장면은 르귄의 파리의4월 이 떠오르기도 한다.

폐수엔진 ★★★★
매력적인 대안적 스팀 펑크. 단편이지만 중편 SF에 필적하는 재미와 밀도를 보여준다.

용구름이 뜬 하늘 ★★★
르귄 느낌의 단편. 대개는 키리냐가 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트로이 소녀 ★★★☆
웹 2.0... 혹은 모바일 웹 시대의 포스트 사이버펑크. 어플리케이션 소녀는 무슨 꿈을 꿀까?

졸업생 대표 ★★★
포스트 휴머니즘 시대의 디스토피아물. 

이야기꾼 대리인 ★★☆
풍자적이고 오싹한 메르헨 호러 판타지.

천국의 신부들 ★★★☆
에일리언 혹은 블러드차일드 , 첫번째접촉 이야기에서 재생산을 다룬 것이 드물지는 않겠지만 이슬람 전승을 통해서 새롭게 다듬어 낸 점은 꽤 흥미롭다.

평가자들 ★★☆
다소 늘어지고 산만한, 옥타비아 버틀러도 연상되는, 호러 SF 단편.

깨어서 걷기 ★★★
다시 블러드차일드 와, 하인라인의 퍼펫마스터 . (더하기 불사주식회사 ?) 결론은 약간 비약처럼 느껴졌지만, 나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댄서 ★★★
이슬람이라고 하기도 지치고 기독교든 유교든 그저 원리주의 가부장적 어떤 종교든지 빠져들 수 있는 디스토피아물.. 여러 모로 많은 층위로 읽힐 수 있는, 그러나 별로 두껍지 않은 엽편. 두껍지 않은데 여러 층위로 읽을 수 있게 하는 현실이 너무 혐오스럽다.

퀴진 드 메므아 ★★★★★
추억은 결코 시각적이지 않다. 가장 직접적인 것은 후각이고, 미각도 또한 거의 마찬가지로 그럴 것이다. (그래, 프루스트.) 결코 추억이라 부를 수 없는, '가슴이 꽉 메어' 오게 하고,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이게 하고,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럽도록 하는 그런 기억들, 지나간 시절의 아물지 않은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상처들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 대한 우아하면서도 절절한 답변.

스톤헝거 ★★
부서진대지 시리즈를 읽지 않았다면 어리둥절해질, 비자립적인 단편.

렉스강가에서 ★★★
유니콘변주곡 이 살짝 떠올랐는데, 매력적인, 나른한 판타지.

수면 마법사 ★★★★
이집트 제국 마법 판타지. 제미신은 손 대는 것마다 서브 장르를 만들어내는 걸까? 아니면 제미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신조어들이, 새로운 표딱지들이 필요한 걸까? 다소 예술주의적이지만 흥미로운 단편.

헤노시스 ★★
예술과 불멸에 대한 산만한 엽편. 

너무 많은 어제들, 충분치 못한 내일들 ★★★
반복되는 시간이란 흔한 소재인데 인터넷 네트워크와 인간 관계에 대한 고찰로 연결시킨 점은 좋았다.

유트레인

비제로 확률 ★★★
머피의 법칙을 가장 잘 소설화한 단편이랄까. 일회성의 예측불가능한 삶에 대한 가장 정직하고 솔직한 신나는 단편 환상소설.

잔잔한 물 아래 도시의 죄인들, 성자들, 용들 그리고 혼령들 ★★★★
담담한 만큼 더 절절한 단편 환상소설.


머더봇 다이어리: 인공상태

2020. 11. 8. 11:57 posted by zelaznied

마샤 웰스 지음
고호관 옮김
알마, 2020.07.

★★☆

전편보다는 나은 속편
가출한 인공지능은 다시 자신처럼(그리고 시리즈 전반처럼) 멍청하고 답없는 인공지능과 인간들 속에 던져지는데, 그래도 전반적인 설정 틀은 전편만큼 억지스럽지는 않고, 그럭저럭 무난하게 이해하며 넘어갈 수 있게 해준다.

제대로 된 SF는 아니지만 제대로 된 SF를 읽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꽤 괜찮은 대안.

재미: 3
감동: 2
SF  : 2.5


시어도어 스터전: 황금나선 외

2020. 11. 8. 09:11 posted by zelaznied

시어도어 스터전 지음
박중서 옮김
현대문학, 2020.07.

★★★★

알았던 이름, 몰랐던 거장
시어도어 스터전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95년에 출간된 고려원미디어의 코믹SF걸작선 의 두 단편이 거의 처음이었고, 이어 98년에 대표 장편인 인간을넘어서 가 그리폰북스 010권으로 출간되었지만, 한 편의 장편과 두어 편의 단편만으로는 그의 작품 세계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기는 힘들었다. 오래도록 그는 오히려 보네거트의 킬고어 트라우트로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장편을 주로 쓰는 작가의 경우에는 힘들지만, 장편과 단편 고루 쓰거나 단편을 주로 쓰는 작가의 경우에는 단편선집이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데에는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13편의 중단편을 모은 이 작품선집은 우리가 몰랐던 스터전의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1950년대 미국 SF의 한 극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록작들 :

천둥과 장미 ★★★
47년작, SF로서의 재미보다는 원폭 이후 세계에 대한 문제 의식이 두드러진다. 삽입된 시를 포함해서 몇몇 문장에서 스터전의 문체의 특징을 볼 수 있다.

황금 나선 ★★★★★
54년작. 뒷표지에 언급된 '광활한 우주의 끝, 고독과 슬픔의 별'이란 아마도 이 작품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잭 밴스 혹은 존 발리 등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생태계의 외계 행성에서 삼대 이상 뻗어나가는 개척대의 기기묘묘한 운명이 펼쳐진다. 장르의 관습에 갇히지 않은 SF적 상상력과 비전이 그야말로 경이감을 주는 결말이 압권이다.

영웅 코스텔로 씨 ★★☆
53년작. 당대 미국 사회에 대한 신랄하고 재치있는 풍자물. 스터전은 SF의 본령에 충실한 작가이고, 따라서 인류나 우주 전체의 역사와 운명을 조망하는 대신 지구라는 조그만 행성의 미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한때에 너무 분노하고 슬퍼하는 모습은 다소 의아하지만, 그의 작품들의 희망과 슬픔들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왜 그리 절실하고 절절했는지는 천둥과장미 와 이 작품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비앙카의 손
47년작. 매혹적인 호러-판타지 소설. SF는 아니지만 스터전답게 기묘하게 아름답다.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재너두의 기술 ★★★☆
56년작. 스터전의 유토피아 SF. 다른 말이 필요할까? 르귄의 빼앗긴자들 과 이언 M. 뱅크스의 컬처시리즈, 딜레이니의 바벨-17 까지도 희미하게 호명하는 선구적인 작품. 디스토피아물이 SF의 악몽이라면 유토피아물은 SF의 백일몽일 것이나, 그러나 유토피아물만큼 작가의 사상을 투명하게 응집시키는 세부 장르도 없을 것이다. 

킬도저! ★★★
44년작. SF보다는 호러에 가깝다. 스티븐 킹의 크리스티나 혹은 맥시멈오버드라이브 등은 모두 여기서 뻗어나온 것이 아닐까? 살아 있는 기계들의 밤. 스터전이 하인라인과 가장 많이 겹쳐지는 지점이다. 실무 공학에서 나오는 감수성과 상상력의 성찬.

환한 일부분
55년작.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이성(異性) ★★
52년작. 생물학적으로는 말도 안되겠지만 살짝 하드보일드풍 전개가 좋다. 수록작들 전반에서 보이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 인류의 잠재력과 진보에 대한 전망은 일견 순진한 낙관으로 보이지만, 결말의 공생체에 대한 설정을 보면 역으로 얼마나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 아파하고 고민한 결과일까 싶어 안쓰럽기도 하다

〔위젯〕, 〔와젯〕, 보프 ★★★
55년작. 전체 틀로서 SF를 읽는 재미보다는 등장인물 각각의 심리적 드라마를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SF적 요소는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 보다도 조금 더 미미하달까.

그것
40년작. 흥미로운 호러 단편.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사고방식
53년작. 흥미로운 호러 단편.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바다를 잃어버린 사람 ★★★★★
59년작. 60년 이전에 이런 단편이 나올 수 있었다는, 실제로 나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감성은 SF의 가장 근본적인 지점ㅡ낙관주의, 도전정신, 모험과 탐험ㅡ인데 형식은 지극히 세련된 모더니즘ㅡ뉴웨이브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가능할까? 그러나 이 작품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느린 조각 ★★★
70년작. 아이디어는 살짝 고색창연하지만 주제의식은 여전히 힘차게 빛나고 있다.


드래곤 펄

2020. 11. 8. 08:21 posted by zelaznied

이윤하 지음
송경아 옮김
사계절, 2020.09.

★★★☆

한국형 청소년 스페이스오페라의 한 가능성
구미호와 여의주, 무당과 김치가 등장하지만, 과연 이런 것들이 들어있다고 해서 한국형 SF, 혹은 한국적 SF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애초에 '한국형' 혹은 '한국적'이라는 수식어들이 어떤 개념 혹은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며, 그러나 그런다고 한들 정답은 없을 것이다.

실종된 오빠를 찾아 집을 나온 소녀가 신분을 위장해서 우주선에 견습생으로 올라탄다. 레테르와 무관하게 청소년을 위한 스페이스오페라로서의 재미가 충분하고, 위기와 해결, 이어지는 반전들이 흥미진진하다. 애초에 지구의 중력을 넘어선 곳에서 부유하는 SF에서 한국적이나 한국형 등의 상표는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재미: 4

감동: 3

SF  : 3

얼마나 닮았는가

2020. 11. 8. 08:07 posted by zelaznied

김보영 지음 

아작, 2020.10. 

★★★★★ 

지난 10년간 한국SF에서 가장 멀리 나간 이야기들
물론 또, 듀나도 있지만, 각각 방향이 다르니 서로 얼마나 더 멀리 나갔는지 비교할 수는 없다. 듀나가 보다 보편적인 SF로서 멀리 나갔다면 김보영은 보다 개별적인 방향으로, 한국 SF의 가능성을 확장했다고 할 수 있겠다.
2009년부터 2020년까지 쓴 단편들을 묶은 이 단편집은, 그러니 지난 10년간 한국 SF가 몇 개의 축에서 그 영역을 확장해나간 기록이자 그 결과물로서의 하나의 지도라고 할 수 있겠다.

수록작:

엄마는 초능력이 있어
김보영 SF의 기본 얼개를 잘 보여주는 엽편. 탄탄한 과학적 설정이 SF의 상상력 속에서 어떻게 시적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 일견 차가워보이는 과학적 진술들이 어떻게 삶의 감정들을 건드릴 수 있는지 볼 수 있다.

0과 1 사이
지난 10년간 발표된 한국 SF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 10년의 세월을 통해 시의성을 넘어 고전으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냈다.

빨간 두건 아가씨

고요한 시대

니엔이 오는 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한국형 초인물이라는 질문에 대한 모범 정답. '한국형', '한국적인' 등의 라벨에 대한 갑론을박은 영원하겠지만, 이 작품이 품은 페이소스와, 이 작품이 던지는 문제의식은 2014년 4월을 전후로 한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 없이는 말할 수 없을 것이며, 그러나 그럼에도 역시나 이후로 지나왔으며 앞으로 지나갈 세월의 무게를 온전히 견뎌낼 힘 또한 가지고 있다.

로그스 갤러리, 종로

걷다, 서다, 돌아가다
엄마는초능력이있어 와 비슷한 말을 할 수 있겠다. 별들의 반짝임을 눈물의 반짝임으로 되비쳐주는 엽편.

얼마나 닮았는가
현시점에서 김보영 SF가 가장 멀리까지 나가 이룬 성취. 이 작품은 전설이 아니라 신화가 될 것이다.

같은 무게


2019. 10. 5. 09:03 posted by zelaznied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엘리, 2019.05.


★★★☆


테드 창의 두 번째 중단편집


2002년에 출간된 당신인생의이야기 이후 17년 만에 출간된 두 번째 중단편집이다. 첫 중단편집의 충격은 기대하기 힘들지만(충격은 대개 처음에만 오는 법이고, 소프트웨어객체의생애주기 외에도 이런 저런 공식/비공식적인 경로로 국내에 이미 소개된 작품들이 상당수 포함된 탓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견실한 SF들이 수록되어 있다.


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

플롯이 매우 정교하고 마지막의 파토스가 효과적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으로는 진부한 결정론적 시간여행물의 재탕이라는 점이 아쉬운 작품이다. 약간 비약이지만 테드 창의 근작들은 자칫하면 진부한 도덕극으로 굴러떨어질 아슬아슬함이 엿보인다.


2. 숨 ★★★★★

일단 세계-우주 자체가 너무 압도적이고, 그 우주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압도적이며, 그 현상에 따라 주인공이 일으키는 사건이 너무 압도적이고, 사건의 결과 다다르는 결말의 결론이 너무 압도적인 문장으로 써져서 뭐라고 할 수가 없다. 다만 압도될 수밖에. 메시지는 단순한 도덕 설교의 재탕에서 벗어나 실존적이고, SF만의 방식으로만 도출되었기에 완벽하고 아름답다. 되돌아 보면 앞의 단편선에서는 일흔두글자 정도만이 떠오른다.


3. 우리가 해야 할 일 ★★★

주제와 형식과 표현과 결말의 합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짧은 만큼 더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


4.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5.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

모든 것이 기괴했던 서구 근대의 기괴했던 육아에 대한 글. 기계와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글. 의도와 결과 사이의 아이러니ㅡ실험 관찰이 세계에 대해서 보다 그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줄 뿐이라는ㅡ에 관한 글.


6.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

언어와 의식과 기억과 문화에 대한 아름다운 작품. 네인생의이야기 로 대표되는, 세계에 대한 사변을 개인의 드라마로 끌어오는 테드 창 특유의 작법이 잘 살아 있다. 객관적 진실과 주관적 기억 사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비극을 근미래 아버지와 딸 사이의 갈등 속에서는 객관적 진실의 편을 들고, 중간 중간 삽입된, 음성언어에서 문자언어로 전이된 아프리카 소년의 체험에서는 오히려 주관적 기억의 편을 들어주며 독자들로 하여금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숙고해보도록 이끈다. 새로운 테크놀러지가 개인과 공동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지에 대한 탐구로서 SF에 대한 작가의 지론이 잘 형상화된 작품이다.


7. 거대한 침묵 ★★☆

테드 창의 작품들 중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파토스에 경도된 엽편. 그렇지만 고독과 단절의 심연을 건너려는 절절한 독백은 마음을 울린다.


8. 옴팔로스 ★★★★

표면적으로는 0으로나누면 과 비슷한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의 신념과 지식에서 벗어난 현상을 발견했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믿었던 질서와 원리가 모두 무너지고 의도 없고 목적 없는 냉혹한 우주에 던져진 인간은 무엇을 통해 방향을 설정하고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 문제는 다시 자유의지의 문제로 발전한다. 테드 창의 제2기라고 해야할 이번 20년 동안 집요하게 천착한 주제다. 주제에 맞게 완전히 새로운 원리로 돌아가는 우주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다시 개인의 극적인 체험과 관점의 변화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표제작 숨 과 더불어 이 중단편선에서 테드 창에 대한 기존의 기대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다.


9.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아이디어가 재미있고 플롯은 정교하고 치밀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파토스에 기댄 드라마일 뿐이라는 점이 아쉽다. 평행우주라는 설정을 빌려 테드 창은 의도와 결과 사이의 차이와 이를 통해 자유의지에 대한 질문을 또다시 던지는데, 평행우주 혹은 다중우주 속 또다른 나가 맞게 되는 결말을 알게되는 사회에서의 사회적 변화가 흥미롭기는 하지만, 초점은 개개인이 맞닥뜨리는 작은 일화들에 집중되어 있다. 

별의 계승자5: 미네르바의 임무

2019. 10. 5. 08:51 posted by zelaznied

제임스 호건 지음
최세진 옮김
아작, 2019.05.

★★★☆


길고 두꺼운 시리즈의 멋진 종착역


외계인의 기원을 밝히고, 살아있는 외계인들을 데려오고, 외계인들의 세계에서 사이버 우주를 발견하고, 매 시리즈마다 새로운 세계를 가져오던(혹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던) 헌트 박사가 이제 스스로에게 다중우주까지 가져온다.(혹은 다중우주까지 나아간다)

77년에 나온 1권은 인류의 전투적인 도전 정신을 예찬하고 별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하더니 이듬해에 바싹 붙어서 나온 2권에서는 돌연, 그런 도전 정신이 창출된 경쟁 위주의 세계관을 친절한 거인들의 사회와 대비해서 회의한다. 지나치게 모험과 흥미 위주로 경도된 3권과 4권에서는 그런 진지한 테마는 잠시 뒤로 물러나더니 한참의 시간을 두고 나온, 타계하기 5년 전에 낸 마지막 장편에서는 3권 결말에서의 실마리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대테마로 돌아 오면서 한 점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고 멋지게 끝맺는다.

생각해보면 3권이 제일 흥미 위주의 이야기로 시리즈의 격을 좀 떨어뜨렸고, 4권도 내부 우주에 대한 흥미로운 사변이 서구인의 제3세계에서의 모험담식의 플롯으로 잘 살아나지 못한 면이 많이 아쉬웠는데 5권은 다중우주에 대한 상당히 하드한 접근과, SF의 가장 굵은 줄기 중 하나인 사회학적 사변이 적절하게 곁들여져서 단권 SF로서도 완성도가 높게 느껴진다.


재미 : 4

감동 : 3

SF   : 4

식스 웨이크

2019. 10. 4. 16:59 posted by zelaznied

무르 래퍼티 지음
신해경 옮김
아작, 2019.04.

★★★

클로닝, 영생, 그리고 미스테리

2009년 테드 창이 부천에서 처음 캔사스의유령 의 도입부를 소개했을 때 느꼈던 전율과 호기심과, 막상 2015년에 불새에서 번역 출간해서 전편을 읽었을 때의 감상이 떠오른다. '클로닝과 기억 전이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미래에, 다른 항성으로 가던 배에서 승무원 여섯 명의 새로운 클론이, 기억이 모두 지워진 채 깨어나고, 그들은 곧 수십 년의 나이를 먹은 자신들의 시체를 발견한다'는 도입부가 매혹적이지만, 실제 결말까지의 여정은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지는 않다는 점에서.
클로닝과 기억 백업, 전이를 통해, 죽어도 죽기 전 백업된 기억을 지닌 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세상에서 살인은 일종의 사회적 망신 주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여러 생애 동안 다양한 직업을 마스터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에서도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이의 갈등은 여전하며,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선 속에서도 미스테리는 발생한다.
미스테리 자체보다는 (SF들에서 많이 다뤄져서 진부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클로닝과 기억 백업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들을, 낯선 환경에 던져진 등장인물들이 차례차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들을 구경하는 SF적인 재미가 쏠쏠하다.

재미 : 4
감동 : 2
SF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