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더봇 다이어리: 인공상태

2020. 11. 8. 11:57 posted by zelaznied

마샤 웰스 지음
고호관 옮김
알마, 2020.07.

★★☆

전편보다는 나은 속편
가출한 인공지능은 다시 자신처럼(그리고 시리즈 전반처럼) 멍청하고 답없는 인공지능과 인간들 속에 던져지는데, 그래도 전반적인 설정 틀은 전편만큼 억지스럽지는 않고, 그럭저럭 무난하게 이해하며 넘어갈 수 있게 해준다.

제대로 된 SF는 아니지만 제대로 된 SF를 읽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꽤 괜찮은 대안.

재미: 3
감동: 2
SF  : 2.5


시어도어 스터전: 황금나선 외

2020. 11. 8. 09:11 posted by zelaznied

시어도어 스터전 지음
박중서 옮김
현대문학, 2020.07.

★★★★

알았던 이름, 몰랐던 거장
시어도어 스터전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95년에 출간된 고려원미디어의 코믹SF걸작선 의 두 단편이 거의 처음이었고, 이어 98년에 대표 장편인 인간을넘어서 가 그리폰북스 010권으로 출간되었지만, 한 편의 장편과 두어 편의 단편만으로는 그의 작품 세계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기는 힘들었다. 오래도록 그는 오히려 보네거트의 킬고어 트라우트로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장편을 주로 쓰는 작가의 경우에는 힘들지만, 장편과 단편 고루 쓰거나 단편을 주로 쓰는 작가의 경우에는 단편선집이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데에는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13편의 중단편을 모은 이 작품선집은 우리가 몰랐던 스터전의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1950년대 미국 SF의 한 극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록작들 :

천둥과 장미 ★★★
47년작, SF로서의 재미보다는 원폭 이후 세계에 대한 문제 의식이 두드러진다. 삽입된 시를 포함해서 몇몇 문장에서 스터전의 문체의 특징을 볼 수 있다.

황금 나선 ★★★★★
54년작. 뒷표지에 언급된 '광활한 우주의 끝, 고독과 슬픔의 별'이란 아마도 이 작품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잭 밴스 혹은 존 발리 등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생태계의 외계 행성에서 삼대 이상 뻗어나가는 개척대의 기기묘묘한 운명이 펼쳐진다. 장르의 관습에 갇히지 않은 SF적 상상력과 비전이 그야말로 경이감을 주는 결말이 압권이다.

영웅 코스텔로 씨 ★★☆
53년작. 당대 미국 사회에 대한 신랄하고 재치있는 풍자물. 스터전은 SF의 본령에 충실한 작가이고, 따라서 인류나 우주 전체의 역사와 운명을 조망하는 대신 지구라는 조그만 행성의 미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한때에 너무 분노하고 슬퍼하는 모습은 다소 의아하지만, 그의 작품들의 희망과 슬픔들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왜 그리 절실하고 절절했는지는 천둥과장미 와 이 작품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비앙카의 손
47년작. 매혹적인 호러-판타지 소설. SF는 아니지만 스터전답게 기묘하게 아름답다.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재너두의 기술 ★★★☆
56년작. 스터전의 유토피아 SF. 다른 말이 필요할까? 르귄의 빼앗긴자들 과 이언 M. 뱅크스의 컬처시리즈, 딜레이니의 바벨-17 까지도 희미하게 호명하는 선구적인 작품. 디스토피아물이 SF의 악몽이라면 유토피아물은 SF의 백일몽일 것이나, 그러나 유토피아물만큼 작가의 사상을 투명하게 응집시키는 세부 장르도 없을 것이다. 

킬도저! ★★★
44년작. SF보다는 호러에 가깝다. 스티븐 킹의 크리스티나 혹은 맥시멈오버드라이브 등은 모두 여기서 뻗어나온 것이 아닐까? 살아 있는 기계들의 밤. 스터전이 하인라인과 가장 많이 겹쳐지는 지점이다. 실무 공학에서 나오는 감수성과 상상력의 성찬.

환한 일부분
55년작.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이성(異性) ★★
52년작. 생물학적으로는 말도 안되겠지만 살짝 하드보일드풍 전개가 좋다. 수록작들 전반에서 보이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 인류의 잠재력과 진보에 대한 전망은 일견 순진한 낙관으로 보이지만, 결말의 공생체에 대한 설정을 보면 역으로 얼마나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 아파하고 고민한 결과일까 싶어 안쓰럽기도 하다

〔위젯〕, 〔와젯〕, 보프 ★★★
55년작. 전체 틀로서 SF를 읽는 재미보다는 등장인물 각각의 심리적 드라마를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SF적 요소는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 보다도 조금 더 미미하달까.

그것
40년작. 흥미로운 호러 단편.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사고방식
53년작. 흥미로운 호러 단편. (SF가 아니라서 별점 생략) 

바다를 잃어버린 사람 ★★★★★
59년작. 60년 이전에 이런 단편이 나올 수 있었다는, 실제로 나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감성은 SF의 가장 근본적인 지점ㅡ낙관주의, 도전정신, 모험과 탐험ㅡ인데 형식은 지극히 세련된 모더니즘ㅡ뉴웨이브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가능할까? 그러나 이 작품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느린 조각 ★★★
70년작. 아이디어는 살짝 고색창연하지만 주제의식은 여전히 힘차게 빛나고 있다.


드래곤 펄

2020. 11. 8. 08:21 posted by zelaznied

이윤하 지음
송경아 옮김
사계절, 2020.09.

★★★☆

한국형 청소년 스페이스오페라의 한 가능성
구미호와 여의주, 무당과 김치가 등장하지만, 과연 이런 것들이 들어있다고 해서 한국형 SF, 혹은 한국적 SF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애초에 '한국형' 혹은 '한국적'이라는 수식어들이 어떤 개념 혹은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며, 그러나 그런다고 한들 정답은 없을 것이다.

실종된 오빠를 찾아 집을 나온 소녀가 신분을 위장해서 우주선에 견습생으로 올라탄다. 레테르와 무관하게 청소년을 위한 스페이스오페라로서의 재미가 충분하고, 위기와 해결, 이어지는 반전들이 흥미진진하다. 애초에 지구의 중력을 넘어선 곳에서 부유하는 SF에서 한국적이나 한국형 등의 상표는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재미: 4

감동: 3

SF  : 3